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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가사는 중산7로에 위치해 있으며 도한 진씨서원이라고도 한다. 청나라 광서14년 (1888년)에 구축을 시작하었으며 광서 20년(1890년)에 완료되었다. |
| 진가사는 남쪽을 향하고 앉았으며 전반적인 구도는 중추선에 위치한 건축을이 주요한 . 부분을 이루고 있다. 주축선의 양켠은 거실인바 편간과 주랑으로 둘러싸여있다매 하나의 단독 건축은 청운항으로 갈라져 있고 건축물 간에는 주랑으로 연결되어 있으며 육원팔랑이 서로 어우러져 있다. 사당의 앞에는 넓다란 정원이 있고 동원과 후원도 있는바 그 면적은 1.5만평방미터이다. 진가사는 진씨서원이라고도 불리우며 중산칠로에 위치해 있다. 그 이름에 따라, 진가사는 광동성 72현 진씨가족의 족당과 서원이었다. 그는 광동성에서 현존해 있는 족당가운데서 규모가 가장 큰 족당이며 또한 영남민간건축장식예술중 대표적인 건축으로서 영남건축예술의 보물고, ¡°백월관사¡±라 불리우며, 국내외에 그 이름을 떨치고 있다. 19세기 20년대 독일 ¡°세계건축예술¡±과 일본의 ¡°영남기승¡±등 외국 서적들중에 이미 기술되었고 아낌을 받고 있다. 진가사원은 영남건축공예장식의 장점을 한몸에 받아않았으며 거의 모든 당, 원, 랑, 정, 문, 창, 란, 벽, 옥척, 가량등에서 영남건축의 ¡°삼조삼숙¡±즉 석조, 목조, 전조, 도조, 니조, 휘조 및 철조공예의 고난이도 기예를 볼 수 있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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