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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동음악은 또한 월악이라고도 하는바, 광동민각곡조와 부분 월극음악, 배자곡을 기반으로 하여 발전된 것이다. 광동음악은 월극과 마찬가지로 국내외에서 이름있는 영남문화의 |
| 일부분으로 꼽히고 있다. 19세기 중엽과 말기, 광주를 중심으로 한 주강삼각주일대의 민간에서 광동음악이 출현되고 발전하기 시작하었다. 광동음악은 그 배경음악에서 기타 지방 민간음악과 선명히 구별되며 영남문화의 ¡°중서를 결합하고 고금을 융합하는¡±특점이 그대로 살아나 있다. 광동음악은 형성초기로부터 경쾌하고 빠르며 우아한 선율 및 왕성한 생명력으로 재빨리 발전되기 시작하었다. 광동음악은 초기에 비파 혹은 양금을 주요한 악기로 하였으며 소, 쟁, 얼후, 삼현 등을 차요악기로 하었다. 민국 초년 후에는 세가지 악기의 조합으로 발전되었는바 하나는 이현, 죽제금, 삼현으로 이뤄진 것이며, 두번째는 소납을 위주로 하고 타악기를 결합한 것이며, 세번째는 통소, 엽호, 비파 등으로 조합을 이룬 것이었다. 20세기 20년대에는 서방악기의 계발을 받고 얼후의 현을 강현으로 바꾸어 월후를 만들어냈으며 양금을 개량하여 새로운 악기 조합을 만들어냈다. 20년대부터 40년대사이 광동음악계의 작곡가들은 또한 수십종의 서양악기와 중국 민족악기를 결합하여 바이올린, 섹스폰, 기타, 목금 등 을 결합하여 광동음악의 풍부함을 살렸다. 그러므로 광동음악은 중, 서 문화 융합의 결정체라고 할 수 있다. 신중국이 성립된 후 광동음악은 새로운 발전의 기회를 얻었는바, 유천일, 진탁영, 엽검천, 진득귀 등 우수한 작곡가와 연주가들이 나타났다. 1953년에는 광동 음악 명가들을 위주로 한 광동음악 연고팀을 만들었다. 1956년에는 이 연구팀에 기반하여 광동음악역사상의 첫번째로 되는 밴드인 광동민간음악단을 구성하었다. 20세기 60년대로부터 그들은 중국을 대표하여 쏘련, 동유럽, 일본, 미국, 서유럽 등 지역의 국가와 지구에서 공연을 진행하였으며 광동음악이 세계각지에 알려지도록 하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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