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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산기념당은 호화로운 팔각형 건축인바 외관상으로는 웅위롭고도 민족적 특색을 지니고 있다. 기념당 옛 지점은 청나라 도련저택이었다. 민국 초년에는 광동 도독, 광동 도군서였다. 1921년 손중산이 광주에서 |
| 비상대총통으로 있을 무렵 총통부도 여기에 설립되었었다. 1921년 진정명이 배반하고 총통부를 불살라 버렸다. 손중산이 별세한 후 광주인민은 그의 혁멱공적을 기념하기 위하여 여기에 중산기념당을 세웠다. 기념당은 1929년 1월에 기반을 닦기 시작했으며, 그 당시 정부 주석인 이제삼이 담당하였다. 그 후 이씨는 장개석에 의하여 남경 탕산에 감금당했으며 이 기간 진제당이 기념당의 구축을 계속해 나갔다. 구축개시 축하때의 기념석은 여전히 기념당 대문 동쪽의 담벽에 박혀 있다. 그 위에는 ¡°중화민국 18년 1월 15일 손중산 선생 기념당 구축 준비위원 이제삼 등 입석¡±이라고 씌여져 있다.
중산기념당은 월수산아래의 동풍로에 세워져 있으며 혁명의 선도자인 손중산을 기념하기 위하여 구축 된 것이다. 설계자는 외국에서 유학하고 온 여염직 선생이다. 여염직은 산동사람이며 그가 설계한 이름난 건축들로는 이 금빛찬란한 기념당 외 남경 중산릉과 월수산위의 기념비 등이 있는바 모두 손중산을 기념하기 위하여 구축한 건축들이다.
중산기념당은 전국 중점 보호유적이며, 광주 전통 시 중추선에 있는 찬란한 주옥이다. 이는 황화강과 같이 ¡°신해의 빛¡±의 영광을 안고 ¡°광주시 십대관광명소¡±라는 영예를 안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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