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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택동은 대혁명 시기에 세번 광주에서 혁명활동을 한 적이 있다. 첫번째는 1923년 6월 광주에서 중앙제3차대표대회를 가지고 중앙위원, 중앙국 비서로 당선되었다. 두번째는 1924년 1월 광주에 와서 중국공산당이 |
| 손중산선생을 도와 국민당을 개편하는데 참여하였고 국민당 일차대표대회에 참석하여 국민당 중앙 후보집행위원으로 당선되었다. 세번째는 1925년 9월에 광주에 오고, 10월에 국민당 중앙선전부 대리부장 직을 맡아서 국민당정치위원회 기관 신문인 ¡°정치주보¡±를 담당하였다. 이듬해 5월에서 9월까지 제6차 농민운동강습소를 운영하면서 친히 소장을 맡았고 수많은 농민운동 핵심인원들을 배양해 냈다. 또한 그 후의 혁명실천중에서 ¡°농촌으로 도시를 포위하고, 무장으로 정권을 뺏는¡±혁명구호를 제기하여 세개의 큰 산을 뒤엎고 민주적이고 자유로우며 부강한 중국을 세우는데 큰 기여를 하였다. 광주농민운동강습소 옛 주소는 광주시 중산사로 42호이며 원 지점은 명나라에 건축된번우학궁이며 공자묘라고도 불리운다. 번우학궁은 1370년에 구축되었다. 이 웅위로운 고대건축은 남으로부터 북으로 이르기까지 영성문, 반지궁교, 대성문, 숭성전과 양 측의 동서주랑으로 이루어졌다. 옛 기념관은 1953년에 구축되었으며 주은래가 ¡°농민운동강습소 옛 지점¡±이라는 글을 편액에 썼기 때문에 사람들은 여기를 ¡°모택동이 주최한 농민운동강습소¡± 혹은 ¡°농강소¡±라고 한다. 1961년 3월 4일 여기는 국무원으로부터 전국 중점 보호 문화유적으로 되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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