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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선관은 혜복서로에 위치해 있다. 명나라 홍무7년(1377년)에 구축되었으며, 오대신선의 제사를 지내던 고대사당이었다. 이 사당은 도교사원으로서 남쪽을 향해 있으며 대문의 편액에는 청나라인이 쓴 |
| ¡°오선대관¡± 네 글자가 있다. 오선관은 산을 따라 구축되었으며, 현존해 있는 건축으로는 두문, 후전, 동채와 서채이다. 오선관은 녹색 유리기와로 지붕을 얹었고 목각구조가 완정하게 보존되어있다.후전의 동쪽에는 홍사암이 삐죽히 올라와있는데, 그 위에는 거대한 발자국이 찍혀져 있다. 고대로부터 줄곳 이를 신선의 발자국이라 하여 중점적으로 보호해 내려오고 있다. 명나라와 청나라시기 여기는 각각¡±서석동천¡±과 ¡°오선하동¡±의 이름으로 광주 팔경에 꼽혔다. 오선관은 옛날부터 전해내려오는 전설에 의거하여 구축된 사원이다. 전설에 의하면 주나라시기 광주는 연속되는 재황을 겪었고 백성들은 계속되는 재난에 허덕이고 있었다. 하루는, 남해 하늘로부터 오색찬연한 구름이 몰려오더니, 채색 옷을 입은 다섯 신선이, 다섯마리 서로 다른 색갈의 털을 가지고 입에 벼를 문 양을 각각 타고 광주에 내렸다고 한다. 신선들은 양들이 물고온 벼를 광주 백성들에게 나눠주면서 금후 영원히 재난이 없기를 축복하고는 다섯마리 양을 남기고 하늘나라로 돌아갔다고 한다. 그후 백성들은 그 벼를 땅에 뿌려 곡식을 심었고, 그때로부터 여기는 백성들이 굶지 않는 곳으로 되었다고 한다. 다섯마리 양은 후에 돌양으로 되었고, 영원히 이 지역의 풍조우순과 행복을 지켜주고 있다고 한다. 그리하여 광주는 ¡°오양성¡±, ¡°양성¡±, ¡°수성¡±이라고 불리운다. 광주사람들은 다섯 신선에 대한 감격의 정을 표하기 위하여 그 당시 오선관을 구축하였다고 한다. 관내에는 다섯 신선 상이 있으며 그 옆에 다섯마리 양의 상도 있다. 이 다섯 신선은 오곡의 신으로도 불리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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