육용사
육용사는 광주시 육용로에 위치해 있으며 광효사와 거리가 멀지 않으며 광주시에서의 역사가 오래되고, 국내외에 이름을 널리 알린 고대사당이다. 사당내에는 보탑들이 즐비하고 나무들이 우거졌으며 유물또한
수없이 많이 저장돼 있다. 또한 역사상 많은 이름난 인물들의 발자취도 여기에 찍혀져 있다. 육용사는 소동파가 당시 이 사당을 위하여 서예를 한 내용으로 이름을 얻었다. 육용사는 광효, 화림, 해동사와 같이 광주 불교사대사당으로 불리운다. 또한 육용사는 사당중의 화탑과 마찬가지로 역사적으로 줄곳 사람들의 추대를 받아왔다. 또한 역사적지위가 광효사와 비슷하기 때문에 ¡°광효는 나무로 이름나고, 정혜는 탑으로 훌륭하다¡±는 구절도 있다. 정효는 육용사의 별칭이다. 원래의 정효사의 규모는 상당히 컸고 산 문은 남쪽을 향해 열려있었다. 명나라 홍무 6년(1373년)에 이르러 사당의 절반은 양식창고로 씌였다, 이로부터 산 문은 동쪽으로 나지게 되었으며 사당의 면적도 점점 줄어들게 되었다. 현재 육용사의 면적은 7000여 평방미터이다. 산 문 내에 동쪽으로부터 서쪽으로의 차례대로 하면 천왕전, 화탑, 대웅보전이 있으며 북쪽에는 해행정사가 있고, 남쪽에는 비랑, 관음전, 육조당, 보융정 등이 있다. 사당의 가옥은 대부분 청나라이후에 재구축되거나 새로이 구축된 것이고, 천왕전만이 명나라시기의 건축양식을 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