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주 삼석과 주강 이름의 유래
고대에, 광주시 구역을 흘러지나는 주강은 아주 넓었는바 2킬로미터에 달했다. 주강의 북쪽은 지금의 연강로에 있는 것이 아니라, 중산로 부근이었고 남안은 천백여년래 거의 변함이 없다. 2키로에 달한 넓이를 ,
가진 주강위에 원래 3개의 초석 섬이 있었는바 해주석 해인석과 부구석이었다. 부구석은 선박 항행 중앙 노선에서 가장 멀리 떨어져 있었는바, 지금의 중산칠로 진가사 부근에 있었다. 송나라이전에 여기는 여전히 주강중의 작은 섬이었고, 사실은 물위에 떠오른 땅덩어리에 불과했었다. 그리하여 부구도라는 이름을 얻었다. 그 후 흙이 부단히 침적되면서 주위와 점차적으로 이어져 육지가 되었다. 민국 초년에 길을 새로이 구축하면서 부구석을 깎아내려 도로 기반으로 닦아버렸으며 끝내는 중산칠로의 한 부분으로 되어버렸다. 해인석은 구동호충의 동쪽편에 있었으며, 현재 광구대로와 광고삼로의 교차지에 있다. 이는 고대 주강선박항행노선중에 서있었던 거대한 초석 섬이였고 그 모양이 인장처럼 생겼다 하여 해인석이라는 이름을 얻었다. 명나라 만력시기 이 돌 위에 해인각이라는 정자를 구축하였으며, 청나라 가격시기에 경관루로 재구축하여 사람들이 올라 주강 경치를 감상할 수 있도록 하였다. 청나라 동치시기 동정포대로 바뀌었으며 그 후에 이 부근은 육지로 되었다. 청나라 말기 해인석은 땅밑에 파묻히게 되었다. 해주석도 고대 주강 선박항행노선에 있었던 거대한 초석 섬이었으며 해주도라고도 이름하였다. 현재 연강서로와 신제 부근에 위치해 있다. 해주석은 장기간 동안 주강 강물에 의해 씻기우면서 주옥같이 반들반들하게 되었다 하여 해주석이라는 이름을 얻었다. 송나라시기 해주석은 강 중심에 위치해 있었으며, 그 후 장기간 동안 흙이 침적되면서 주강 북쪽과 이어지게 되었다. 1931년 신제를 확충하고 연강서로를 구축하면서 해주석은 땅밑에 파묻히게 되었다. 해주석의 정확한 위치는 주강북쪽 해주화원내이다. 최근 광주시 정부에서는 해주석 주위의 흙을 파헤치고, 주변에 유리 외각을 씌운후 해주석 공원을 구축하여 광광객들이 엘리베이터를 타고 지하에 내려가 해주석을 볼수 있도록 준비하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