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한남월왕 묘지
왕궁의 중심은 고고학자들이 2000년초에 발굴한 500평방미터의 1호궁전유적이다. 여기서 2000년전의 남월왕궁의 두갈래 ¡°산수¡±를 볼수 있고, 1300년전의 당나라때의 벽돌로 된 도로를 볼수 있으며, 1000년전의 사열남한궁전의
¡°상돈¡±기반을 볼수 있으며, 또한 여러가지 건축구조물의 유적들을 볼수 있다. 유적지 구덩이 밑부분에 자갈돌로 만들어져 띠같은 모양을 이룬 ¡°석띠¡±를 볼수 있다. 중국 사회과학원 고고학연구소 소장이며, 고대궁전고고학전문가인 유경주가 고찰할때, 이 석띠는 고대 황궁 지붕아래에 깔아서 비물을 받아내는 작용을 일으키는 ¡°산수¡±라고 하였다. 한나라때의 건축구조중에서, 자갈돌로 ¡°산수¡±를 만드는 것은 계급적 제한이 있었는바, 만약, 궁전 지면 사방에 모두 ¡°산수¡±를 만들어 놓는다면, 이는 황궁의 표지이고, 양쪽에만 만들어놓는다면 이는 왕의 거처라는 표지이다. 현장에서 볼수 있다 싶이 궁전의 북쪽과 동쪽에 모두 ¡°산수¡±가 깔려있었고, 중국 건축에서의 대칭 규칙에 의한다면, 아직 땅밑에서 나오지 않은 서쪽과 남쪽면에도 ¡°산수¡±가 깔려 있을 것으로 추정되었다. 그러므로, 이 궁전은 남월국이 한나라 황궁에 근거하여 구축한 것이었다. 규모로부터 볼때 이는 남월왕이 사무를 보는 곳이었다. 유소장은 궁전은 이 하나뿐이 아닐 것이며, 북경의 태화전, 중화전, 보화전같은 다른 궁전이 있을 것이라고 하였다. 유소장의 30년 궁전 고고학 경험으로부터 볼때 이미 땅밑에서 나타난 궁전은 상당한 규모를 갖추었는바, 남쪽에는 더 큰 궁전이 없을 것이고, 더큰 면적의 궁전은 서쪽에 있을것이라고 판단하였다. 소개에 따르면, 현재 나타난 부분은 남월왕궁의 일각일 뿐이며, 전체 궁전군의 1%에도 미치지 못하는바, 궁전의 주체부분도 아직 나타나지 않은것으로 알려졌다. 왜냐면, ¡°산수¡±가 22미터밖에 나타나지 않았기 때문이고, 계단이나 문턱도 하나도 나타나지 않았기 때문이다. 일호궁전의 북쪽 성벽의 길이는 50미터 이상에 달할것으로 예측된다. 자료소개에 따르면, 서안의 한나라시기 건축인 장락궁 앞 궁전의 동서 길이는 50장에 달하고, 미앙궁은 무려 200미터에 달한다고 한다.